- AI를 도입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으나 성공하는 경우는 많고
- 기술적 어려움보다 AI에 잘못된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수년간 현장에서 느낀 바를 정리하여 헤럴드경제에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비롯한 다양한 AI를 일상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 산업·공공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로 글쓰기나 단순 자동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술은 분명 발전하고 있지만, 왜 그 효과는 체감되지 않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AI를 도입하면서 ‘무엇을 더할 것인가’만 고민했지, ‘무엇을 없앨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는 화려한 기능을 덧붙이는 기술이 아니다. 진짜 가치는 불편함과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있다. 반복적인 서류 작업, 불필요한 승인 절차, 시간 소모적인 자료 조사가 대표적이다. 마치 안경이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듯, AI도 먼저 ‘없애야 할 일’부터 정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따라서 AI 도입은 이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너무 익숙한 불편일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답은 외부 전문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가 가장 잘 안다. 감정을 소모하며 전화로 대응해야 하는 일, 허술한 데이터 흐름은 그들만이 정확히 체감한다. 하지만 불편함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적 해결책을 제안하고, 그것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무자 경험, AI 전문가의 기술력, 조직 전략을 연결하는 협업 구조가 AI 성공의 핵심이다. ‘현장과 기술의 협업’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모델로 설계돼야 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여전히 부서 중심 조직도로 업무를 나눈다. AI에게 부서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보가 어디서 생성되고, 어디로 흐르며, 어떻게 연결되는가다. 때론 조직 구조를 넘어, 데이터 흐름 중심으로 문제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때 데이터 품질, 접근 권한, 보안 체계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AI는 보여주기식 시연으로 끝난다.
AI는 한 번 구축하면 끝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특히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반 AI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저하된다. 데이터가 바뀌고 업무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유지보수와 성능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하지만 많은 조직은 이 유지보수를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취급한다. GPU 서버 같은 고비용 인프라는 조직 전체가 공동 관리해야 하며, 유지보수 인력에게도 명확한 책임과 보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잘 만든 시스템도 방치되어 잊히고 만다.
AI는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이다.
기술과 인프라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과 ‘조직’이다. AI 도입을 가로막는 진짜 장벽은 기술 부족이 아니다. 사람 간의 벽, 부서 간 단절, 위에서만 결정하는 소통 구조가 더 큰 문제다. 실무자는 문제를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경영진은 “AI 써보자”는 말만 남긴 채 정작 무엇을 해결하려는지는 공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AI를 고민할 땐, 기술보다 질문을 먼저 바꿔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 없애고 싶은 불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어서 물어야 한다.
“그 일을 없애기 위해 운영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까지 바꿀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을 때, AI는 조직의 미래를 바꾸는 진짜 동력이 된다.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AI·계산과학실장(국가인공지능위원회 산업·공공분과위원)